编者按
70年代到80年代,韩国工人经历了一个全新的斗争浪潮兴起的过程,争取到工资和生活水平的大幅提高、苛刻和不健全的福利制度的初步建立,但90年代至今又经历了一个资产阶级反攻、斗争受挫、工人分化严重的过程。这个斗争浪潮为我们留下了许多有待汲取的经验教训,也留下了一些可贵的斗争文化。工运歌曲是其中的重要部分。有朋友译出歌词并制作了视频。我们陆续选录上传。
勞動解放의 붉은 피 끓어 넘치오메
工人解放的鲜红的血 沸腾满溢胸膛
暴風마저도 휘돌다간 金主益同志여
肆虐的暴风 也没能动摇 金主益同志啊
〔金皓鐵注:金主益同志自杀之前,韩国刮起了台风。当时金主益同志在韩进重工业(造船工厂)85号起重机上。85号起重机周围,有很多造船厂造船大型起重机发生了折断的事故,但是金主益同志上去的85号起重机虽然晃动了,却没有倒塌。为了表示连台风都没有动摇金主益同志的决心,写下了这样的歌词,意思是"虽然台风肆虐,但没能摧垮起重机就离去"〕
慘酷한 資本의 나라 地獄같은 現場에
在残酷的老板国家 在地狱般的现场
〔注:现场,即工作场所和斗争场所。〕
同志를 爲해 生存을 爲해 그대 가셨는가
为工友同志 为工人生存 你就这样走了吗
아 烈士여 내 親舊여 勞動解放의 밑불이여
烈士啊 我的朋友啊 工人解放的火种啊
썩은 世上을 사르는 큰 불이 되소서
把腐朽世界点燃吧 化作冲天烈火
아 烈士여 내 親舊여 勞動者의 흙가슴이여
烈士啊 我的朋友啊 工人的心 泥土般质朴
죽어서 다시 살아 올 金主益同志여
死者啊 再活过来吧 金主益同志啊
죽어서 다시 살아 올 金主益同志여
死者啊 再活过来吧 金主益同志啊
金主益背景
译者│柳云川 校对│近卫堇
2003年,为抗议韩进重工频频减薪裁员、打压工会,韩进工会委员长金主益同志登上85号起重机的控制室,一个人抗议了90多天,但资方对他不理不睬。为了表明自己决死抗争的意志,金主益同志在起重机内上吊自尽,享年40岁。
遗书
오랜만에 맑고 구름 없는 밤이구나.
好久没有晴朗无云的夜晚了啊。
내일 모래가 추석이라고 달은 벌써 만월이 다 되어 가는데
后天就是中秋,那时月亮已经要满月了,
내가 85호기 크레인 위로 올라온 지 벌써 90여일.
我登上85号起重机已经90多天了。
조합원 동지들의 전면파업이 50일이 되었건만 회사는 교섭 한번 하지 않고 있다.
工会成员同志的全面罢工已经进行了50天,但公司却一次也没有进行谈判。
아예 이번 기회에 노동조합을 말살하고 노동조합에
看样子是决心趁此机会抹杀工会,
협조적인 조합원의 씨를 말리려고 작심을 한 모양이다.
灭绝那些协助工会的工会成员。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在这个国家,工人为了活得像一个人,必须豁出性命;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썪어빠진 정치꾼들은
尽管如此,资本家和腐败政客们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依旧嚎叫着:“工会太过强硬,国家要灭亡了!”
1년 당기 순이익의 1.5배, 2.5배를 주주들에게 배상하는 경영진들,
管理层每年向股东支付1.5倍、2.5倍于当期纯利润的赔偿金,
그러면서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어렵다고 임금동결을 강요하는 경영진들.
同时却冻结工人的工资、不许加薪。
그토록 어렵다는 회사의 회장은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거액의 연봉에다
公司处境那么艰难,总裁却领着不知多少的巨额年薪——
50억 원 정도의 배상금까지 챙겨가고 또 1년에 3천5백억원의 부채까지 갚는다고 한다.
据说,他能收取50亿韩元左右的赔偿金,一年还能偿还3千5百亿韩元的债务。
이러한 회사에서 강요하는 임금동결을 어느 노동조합,
어느 조합원이 받아들이겠는가.
由这样的公司强迫冻结工人工资,
哪个工会、哪个工会成员会接受?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 달 기본급 105만원.
尽管我已在这家公司工作了21年,但每个月的基础工资只有105万韩元
그중 세금들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팔십 몇 만원.
扣除税金之后,只能剩下80多万
근속 년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텐데
按理说干了那么久,我的生活应该有哪怕一点点的改善才对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 더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죽어야 한단 말인가.
谁知道我竟然是工作干得越久,日子过得越紧张。那些保守派张嘴就来,说什么“因为工会太贪得无厌,国家要完蛋”的屁话的屁话,照这么讲是要工人全都饿死吗?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反正如果这次斗争失败的话,包括我在内的许多人,是除了死以外没有别的路了。
하지만 나 한사람이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리 수가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但只要能用我一个人的死,换来许多同志的生,我就会义无反顾,不做他想。
경영진들은 지금 자신들이 빼어든 칼에 묻힐 피를 원하는 것 같다.
看来,管理层已经拔出了利刃,必须要见血了。
그래, 당신들이 나의 목숨을 원한다면 기꺼이 제물로 바치겠다.
来吧,你们想要我的命,就来吧。
하지만 이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但是,这场斗争必须要胜利啊!
잘못은 자신들이 저질러놓고 적반하장으로 우리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에 고소고발로 구속에 해고까지 노동조합을 식물노조로 노동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을 이 투쟁을 통해서 바꿔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敌人现在贼喊捉贼,竟让我们赔偿他们的损失,并通过查封、逮捕、控告、拘留、解雇的手段威胁工会成员,想把工会变成植物工会,把工人变成植物人。如果我们不能通过这次斗争改变劳务政策,我们大家就要跌下悬崖了!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승리할 때까지 이번 투쟁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因此,你们一定要将斗争坚持下去,直到胜利的那天!
그동안 부족한 나를 믿고 함께 해준 모든 동지들에게 고맙고 또 미안할 따름이다.
一直以来,信任着不足的我,并和我并肩斗争的同志们,谢谢你们,对不起。
그렇지만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 것,
40년의 인생이었지만 남들보다 조금 빨리 가는 것뿐,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
人生自古谁无死,尽管我只活了40年,看起来比其他人要短一些,但我没什么后悔的地方。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무엇하나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해어지게 되어서 무어라 할 말이 없다.
在工会工作期间,对老婆和孩子,我只有亏欠。搞成这样,我没什么好辩解的。
아이들에게 휠리스 인지 뭔지를 집에 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온 지
며칠 안 되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조차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登上起重机几天后和孩子们约好了,回家就给他们买暴走鞋。
但我竟连这个约定都不能遵守,真的很抱歉。
준엽야, 혜민아, 준하야.
아빠가 마지막으로 불러보고 적어보는 이름이구나.
俊烨啊,慧敏啊,俊河啊(音译)
爸爸最后一次写下你们的名字,最后一次唤你们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 바란다.
그리고 여보,결혼한 지 십 년이 넘어서야 불러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호칭이 되었네.
孩子们,你们一定要健康的成长;亲爱的,这是我们结婚十年来,第一次这样叫你,却也成了最后一次。
그 동안 시킨 고생이 모자라서 더 큰 고생을 남기고 가게 되어서 미안해.
一路走来,让你受苦了,对不起。
하지만 당신은 강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서 잘해주리라 믿어.
그래서 조금은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애.
但你是个坚强的人,我相信你一定会过得很好。因此,我也可以放心地上路了。
이제 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먼저 가신 부모님과 막내누나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럼 모두 안녕.
现在我要上到天国,与已经先行一步的父母与小姐姐见面了。
大家,再见了。
——金主益 2003年9月9日
金主益同志生平
1963년 2월 2일(만40세)부산출생
1963年 2月 2日生于釜山
1975년 2월 철암초등학교 졸업
1975年 2月 毕业于铁岩小学
1978년 2월 철암중학교 졸업
1978年 2月 毕业于铁岩初中
1981년 2월 태백기계공고 졸업
1981年 2月 毕业于太白机械工业高中
1982년 2월 (주)대한조선공사 직업훈련소 입소
1982年 2月 进入大韩造船公社职业训练所
1982년 8월 1일 (주)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입사
1982年 8月1日 入职大韩造船公社(现韩进重工)
1990년 8월 제28대 대의원, 문체부장으로 활동
1990年 8月 以工会文体部长身份当选第28届工会代表
1992년 8월 제30대 수석부위원장
1992年 8月 当选第30届工会首席副委员长
1993년 8월 25일 제30대 부위원장 역임
1993年 8月 25日 历任第30届副委员长
1994년 제31대 사무국장 역임
1994年 历任第31届工会事务局长
1994년 7월 LNG 선상파업투쟁으로 구속, 강제 휴직당함
1994年 7月 因LNG船上罢工斗争被捕,遭强制停职
1995년 8월 원직복직, 산업안전보건위원으로 활동
1995年 8月 复职,以产业安全保健委员身份活动
1996년 8월 제34대 대의원 역임
1996年 8月 任第34届工会代表
1997년 8월 제35대 대의원 역임
1997年 8月 任第35届工会代表
2000년 11월 5일 한진중공업통합 노동조합 초대위원장 당선
2000年 11月 5日 当选韩进重工统合工会首任委员长
2002년 11월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 재당선
2002年 11月 当选金属工会下属韩进重工工会分会长
2003년 10월 17일 투쟁중이던 85호기 크레인 위에서 한진재벌에 맞서 자결, 운명
2003年 10月 17日 在对抗韩进财阀的罢工斗争中,自杀于85号起重机上
「 支持!」
您的打赏将用于网站日常运行与维护。
帮助我们办好网站,宣传红色文化!